리틀 인디아에 온 걸 환영해

치폴레에서 일을 시작한지 한달 반이 되었네
첫 출근했을 때는 모든 것이 간단하게 보여 한달 쯤이면 다 적응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간과한 변수가 있다
1. 같이 일하는 동료들
처음 스케쥴 표를 받았던 날 동료들의 이름 중 singh이라는 성이 많이 보였지만 다 본투비 캐나다 사람이겠거니 했다. 나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면 어쩌지? 영어를 잘 못해서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어쩌지 걱정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마주한 영어는 토익, 아이엘츠 시험에 나오는 명확하고 깨끗하게 들리는 표준 영어와는 많이 다른 힌글리시(Hindi+English)였다. 백날 토익이나 아이엘츠로 영어 리스닝을 공부해봐야 힌글리시 앞에서는 소용이 없어
근무한지 1, 2주 지났을 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서로 영어를 안쓰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힌디. 한국에서 살때는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다. 집에서 챗지피티에 동료들 성을 검색해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70% 정도가 인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GM, SL, KM다 인도가 장악했어. 힌글리시 못하니 동료와 조금 덜 친해지는 건 억울하지 않지만 매니저의 지시를 잘못 알아듣거나 아예 못알아 듣는 경우가 많아 서로 난감한 적이 많다. 나 이러다 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지어 어느 날은 서로 분명히 영어를 하고 있는데 왜 소통이 안되는걸까 너무도 답답해 차라리 짤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고 혼자 상대의 의도를 오해해서 질질 짜면서 집에 온적도 있다.
2. 이곳의 문화
한국보다 더한 빨리 빨리문화. 장담컨데 지금 우리 매장 직원들 그대로 한국 종합운동장 옆 편의점에서 일하도록 시키면 매출 전국 1위 할 수 있을 것 같음. 애들이 젊고 빠릿하고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 같아. 캐나다의 디씨와 같은 Reddit에 Chipotle를 검색해보면 악명 높은 근무 강도에 대한 내용이 많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채용되고 나서 그렇게 좋아했을까. 첫날 출근하고 근육통에 끙끙 앓으면서 잤다. 거기다 칩 튀기는 날이면 라임 스퀴저를 두 주먹으로 꽉 움켜잡아야 하니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두 손이 퉁퉁 부어 있다. 보울 잡아야 하는데 자꾸 엄지 손톱 사이로 잡게 되어서 손톱도 다 갈라지고. 근데 음식점이라 밥은 잘줘. 재료도 좋고 질리지 않고 건강한 음식이야. 일은 빡세게 시키는데 굶기지도 않는다. 마치 조선시대 노비처럼 높은 확률로 짤릴 것 같지만 만약 짤리지 않고 계속 여길 다니면 그냥 이렇게 나는 치폴레 노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3. 나와 이들의 융화 가능성(?)
내가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케이 드라마에 미쳐있어 누구든 드라마 이야기로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 인도인들이 이렇게 케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줄 몰랐어. 나는 한국드라마를 잘 안보고 그나마 제일 최근에 본게 더글로리 오징어게임인데 얘네는 이런 장르가 아니라 로맨틱 케이 드라마 엄청 좋아한다. 나는 오글거려 보지도 못하는 걸 자기들은 완전 obssessed 되어있데. The tear of queen이건 무슨 드라마인지는 알겠는데 그냥 본척 했고 다른 건 어떤 드라마인지 가늠도 안되었다. 하도 인도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을 좀 이해해 보려고 인도 관련 다큐멘터리를 몇 편 보았는데 내가 이해하고 공통분모를 찾기에 그들의 문화는 매우 깊고 넓고 심오했다.
결론은 내가 여기서 적응을 잘 할 확률은 한자리 수에 가까워. 어찌저찌 얻은 일자리지만 다른 일자리를 기웃거리고 있다. 인도인이 상대적으로 적고 음식을 다루지 않는 곳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평소 염두해둔 곳에 자리가 나 이력서를 넣었는데 좋은 소식이 있었음 좋겠어. 자스민의 푸쉬 아래 칩을 튀기는 고문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래도 맨날 언니 언니하며 나를 따라다니는 질과 가능하면 여기서 힘든 일 하지 말고 카페나 음식을 다루지 않는 곳으로 빨리 이직해보라고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니키타가 있어서 그나마 버티고는 있다.